상세정보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저자
김동현
출판사
광일인쇄출판사
출판일
2024-08-29
등록일
2024-12-03
파일포맷
PDF
파일크기
126MB
공급사
교보문고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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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편찬에 부쳐
‘복국조(復國?)’의 노래
憐爾聲聲?欲斜 불쌍하다 너의 소리, 해는 지려 하는데
其鳴復國國誰家 그 울음소리 뻐꾹 뻐꾹 너의 집은 어디냐?
痛哉萬古同情恨 슬프구나 오랜 세월 똑같은 정한(情恨)
槿域江?久失花 무궁화 피는 강산에 꽃을 잃은 지 오래일세
탈초를 해가면서 번역을 진행하였다. ‘復國?’를 그냥 소리나는대로 복국조라 적었다가, 읽어보니 뻐꾹새와 비슷하여 뻐꾹새로 고쳤다. 復國?를 뻐꾹새로 풀었으니 본문의 復國國은 ‘당연히’ 뻐꾹 뻐꾹이겠거니 싶어 그렇게 적어두었다. 시를 번역·출판하기 위한 요건이 무엇일까? ‘시인의 일대기를 잘 알아야 한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상을 이해하여야 한다, 번역한 표현을 독자가 읽고 의미를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 등등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 더 꼽아본다. ‘시를 번역할 수 있는 실력(實?)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번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은 위의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갖추고 있다 해도 피상적이었다. 따라서 번역 내용 역시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표현으로 옮겨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앞섰다. 동암 선생께서 1946년에 타계하셨으니 올해로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까지 번역‘되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다. 900여 편이 시가 수록된 한시집을 번역하면서 동암 선생의 시 세계에 대하여 배우고 느끼게 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인’으로서의 동암 선생이다. 작품들은 형식과 내용 모두에 있어 정제되어 있다. 대부분의 시에서 시운(詩韻)과 평측(平仄)을 맞추고, 흥이 일어 쓴 시(興), 있는 그대로 읊은 시(賦), 비유를 살린 시(?) 등 형식미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 소재는 울분을 토할 일이나 진흙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듯한 표현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고요한 가운데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주먹을 쥐게 만든다. 아울러 다양하면서도 쉬운 표현, 조탁(彫琢)을 거듭한 정제된 표현으로 문학성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둘째, ‘교육자’로서의 동암 선생이다. 시 속의 ‘請君益勉賢勞事’이라는 표현처럼 일하면서 도 배울 것을 강조하고, ‘厭學兒’라는 시에서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또한 일기(독립기념관 인터넷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다)에 서당을 운영했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셋째, ‘지역 지도자’로서의 동암 선생이다. 농부들과 장마와 가뭄을 함께 걱정하고, 이웃들이 겨울 나는 일을 걱정한다. 농업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데 앞장선다. 또한 행주산성 내 건축물이나 지역의 건축공사, 지역단체 활동을 주관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의 징병에 희생된 가족들을 격려하고, 세상을 뒤로한 사람들을 위하여 만가(挽歌)를 지어 위로한 내용 역시 시에 반영되어 있다.
넷째, 생활인으로서의 동암 선생이다. 가장으로서 또 가족으로서 형제자매와 자녀의 일들을 걱정하며, 여러 애환을 시로 나타내고 있다. 친구를 만나서 ‘한 잔’하기도 하고, 간혹 ‘익살스러운’ 시를 쓰기도 했다.
다섯째, ‘지사(志?)’로서의 동암 선생이다. 한집 첫 수 ‘登杯?’에서 ‘百戰喊聲餘?邱’라 하여 행주산성에 아직 적을 물리칠 때의 함성이 남아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우국충정의 정신은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일관되고 있다.
끝으로, 역사기록자로서의 동암 선생이다. 선생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몇 년 뒤 다시 만세운동을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아 대략 1925년 경에 선영(先塋)이 있는 고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한집에 수록된 시는 이 시기를 전후한 기록이다. 선생께서 모스크바 삼상회의(1945년 12월) 등을 소재로도 시를 남기고 있음을 볼 때, 1945년에 끝난 일기와 더불어 거의 임종 직전까지 기록을 남기고자 애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번역작업을 하는 과정에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복국(復國)’ 이 한 단어가 선생의 일관된 정신임을 알 수 있었고, 뻐꾹새를 복국조(復國?)로 고쳤다. 번역에 참여한 일동이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 염두에 두었던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인이 시를 쓸 때의 눈으로 시인이 보았던 방향의 사물을 보고, 시인의 마음으로 당시 사회를 보고자 하였다. 그것이 시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보다 객관화시키는 기준이 되었다.
둘째, 원문에서 글자를 알아보기 힘든 내용은 번역에서 제외하였다. 원문의 107쪽 7수, 108쪽 8수 등 합쳐서 15수이다.
셋째, 요즘 잘 쓰지 않는 글자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 서 쉽게 알 수 있는 글자로(예: 仝 → 同), 약자는 정자로(?→數) 바꾸었다.
넷째, 번역된 ‘한글 시’는 될 수 있는 대로 ‘한글세대’가 한문 없이 읽을 수 있도록 다듬고, 그래도 부족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해설을 곁들인 ‘감상’ 형식으로 보충하였다. 다만 ‘감상’은 이 글을 붙인 사람의 주관과 억측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용하거나 참조했던 출처에 관한 부분이다. 인터넷 포털의 한자사전, 표준국어대사전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한국고전번역원 인터넷데이터베이스의 도움이 매우 컸다.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 데이터베이스, 그 밖에 여러 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 자료들을 활용하였다. 주석은 대부분 위 자료들로부터 그대로 재인용하거나 정리한 것이다. 고마움을 표한다.
한시집이 번역되어 나오기까지 주위의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이 있었다. 이경혜 경기도의회 의원께서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발 벗고 나서서 문화재단과 다리를 놓아주셨다. 경기도 문화재단에서는 다른 중요한 사업이 많음에도 흔쾌히 지원을 결정해 주었다. 그리고 한준호 국회의원, 이동환 고양시장, 명재성 경기도의회 의원, 김용규 고양문화원장, 우관제 파주문화원장을 비롯한 관계직원 등 많은 분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이종찬 광복회 회장께서 추천사를, 윤열상 한시협회 명예회장께서 축사를 실어 주셨다. 또한 각 기관·단체에서 실무를 주선해주신 담당자님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도 있었다. 모든 분께 이 지면 을 빌려서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번역시집은 초고(草稿)로 끝나고, 전문가의 손을 거쳐 내용과 형식을 함께 갖춰 선생의 정신이 온전히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를 위해 선생의 친필 사본을 첨부하여 함께 인쇄하였다.)
2024년 3월 1일.
역자들을 대표하여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편찬위원회 위원장 장 세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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